• 우리 주변에 맴도는 ‘과도한 PC함’이라는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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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취여신 | 2019.01.30 16:01 | 조회 399
    위근우의 리플레이

    우리 주변에 맴도는 ‘과도한 PC함’이라는 허수아비

    지난 18일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물 <엄마 아빠는 PC충!>이 조회수 20만에 육박하며 엇갈린 시청평을 양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 18일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물 <엄마 아빠는 PC충!>이 조회수 20만에 육박하며 엇갈린 시청평을 양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위근우 칼럼니스트
    2019.01.25 16:51 입력
    한국 사회에서 ‘PC’<정치적 올바름>로 인한 ‘경직된 문화’ 걱정은 주제넘은 소리

    유병재 동영상 속 ‘PC충’
    등장 왜곡된 인식 만들며 실천적 폭력
    댓글선 ‘ PC함’을 희화화·비난 

    하나의 허수아비가 문화 공론장을 배회하고 있다.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함이라는 허수아비가. 이 허수아비를 공격하기 위해 남초 커뮤니티와 지식장의 문화평론가, 인기 코미디언 등이 신성동맹을 맺었다. 지난 18일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엄마 아빠는 PC충!>이라는 영상물을 올렸다. 딸이 백인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자 ‘PC충’ 부모들은 자신들은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하지 않는다며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흑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포문을 열기 시작해 백인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을 “백인 우월주의자”로 몰고, 딸의 애인이 다이어트하는 것을 비만인 혐오로 규정하고 비난한다.

    딸이 백인인 외국인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자 <엄마 아빠는 PC충!> 속 부모들은 “흑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포문을 열기 시작해 백인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을 “백인 우월주의자”로 몰아간다.  유튜브 캡처

    딸이 백인인 외국인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자 <엄마 아빠는 PC충!> 속 부모들은 “흑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포문을 열기 시작해 백인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을 “백인 우월주의자”로 몰아간다. 유튜브 캡처

    이 영상은 PC하냐 하지 않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별로 웃기지 않다. 당장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어떤 텍스트 안에 인종이나 성, 외모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거나 비판하는 움직임에 대해 ‘PC충’이나 ‘PC병자’ ‘프로불편러’ 등의 표현으로 비하하는 건 지난 몇 년에 걸쳐 한국 남초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들은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도드라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나 흑인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블랙팬서> 등에 대해 ‘PC 묻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일베’ 정도 되는 극우세력이 아닌 이상,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부정하기란 어렵다. 하여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과도한 PC함이다. PC함에 대한 강박 때문에 상대를 환장하게 만드는 <엄마 아빠는 PC충!>의 부모는, 말하자면 과도한 PC함의 현현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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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과도한 PC함이란 우리의 생활세계 안에서 어떻게 실재하고 있을까. 당연한 수순의 질문 앞에서 사실 나는 꽤 곤혹스러워진다. 과도한 PC함이라는 말은 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구체적인 지시체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게임 ‘오버워치’ 캐릭터인 솔져:76이 게이라는 설정이 밝혀지자 남성 유저들은 ‘PC 묻었다’며 분노했다. 어떤 서사 안에 성소수자 캐릭터의 비율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것이 PC한 방향인 건 맞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게임 중 솔져:76 캐릭터를 죽이면 호모포비아 딱지가 붙어 강퇴당하나? 게임 중 팀을 짤 때 여성, 게이, 비(非)백인 쿼터가 유지되지 않으면 팀 구성을 불허하나? 하루에 백인 이성애자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었나? 과연 과도함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엄마 아빠는 PC충!>에서 불고기를 좋아한다는 딸 애인에게 “육식은 비도덕적인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무안을 주는 아버지는 아마 과격한 비건에 대한 풍자적 묘사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과도한 채식주의가 존재하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피자집 사장에게 왜 채식주의자용 피자가 메뉴에 없냐고 꾸중하나? 시청자들이 돈가스집 사장에게 공장식 돼지 사육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나? JTBC <한끼 줍쇼>에서 출연자가 고기 반찬을 거부해 방송이 펑크라도 났나? 과연 과도한 PC함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폭력은 올바름 좇는 강박보다
    그름에 대한 용인의 형태로 존재 

    이러한 난감함은 과도한 PC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쪽에서도 느끼는 듯하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은 콘텐츠 서비스인 북저널리즘에 제공한 ‘정치적 올바름과 살균된 문화’라는 글에서 대학 교양 글쓰기 수업 중 교재로 <햄릿>을 쓰려 하자 한 학생이 본인은 페미니스트이기에 여성혐오 텍스트를 배우고 싶지 않다며 수업을 거부했더라는 지인의 일화를 소개한다. 문강형준은 “학생의 결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생각과 신념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거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오직 ‘자기 자신’만 남게 되는 편협함”을 우려한다. 자, 여기서 과도한 게 무엇인가. <햄릿>의 여성혐오적인 요소에 반대해 수업을 거부한 학생 한 명의 행동이 과도한가, 해당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지젝의 ‘자기애적 주관성’ 개념을 인용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벌어진 남교수 파면 사건을 인용하고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가 지적한 회의주의의 확산 개념을 연결하며 필립 로스의 <휴먼스테인>의 줄거리와 주제의식을 더해 그 한 명의 학생으로부터 기어코 “자신의 정체성이 딛고 서 있는 자리만 중요한 진정성의 문화”를 읽어내고야 마는 문강형준의 지적 여정이 과도한가. <햄릿> 공부를 거부한 학생의 결정이 성급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경천동지할 위기감을 도출해내기 위해 문강형준은 실제로 벌어진 일보단 그로부터 발생할지도 모를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를 들고 온다. 그는 같은 글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을 ‘살균된 문화’로 지칭하며 이것이 “오히려 디스토피아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즉 문강형준은 여성혐오나 외모지상주의, 인종차별주의 등을 병균 보듯 하는 PC함의 폭력성을 논증하고 싶지만, 당장 실재하는 폭력을 찾을 수 없기에 그러한 병균을 모두 치워냈을 때 등장할지도 모를 살균된 미래로 달려가야 한다. 그가 <터미네이터2>의 사라 코너처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의 논변은 허구적이다.

    오히려 거대한 폭력 외면이 문제
    ‘불편하다’는 이들이 더 유난일 뿐

    결국 과도한 PC함이란 두 가지 형태로만 존재를 드러낸다. 유병재가 만든 동영상 속 ‘PC충’이라는 가상의 형태로, 혹은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를 디스토피아의 형태로. 그렇다면 이것을 진짜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인정해야 한다. 과도한 PC함이라는 건 엄살이다. 아니, 엄살이란 말은 취소하겠다. 과도한 PC함이나 ‘PC충’은 실체 없는 허구적 표현이지만, 그 허구는 결과적으로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들며 실천적인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유병재의 동영상에 붙은 댓글들을 보라. 요새 극성인 ‘PC충’들과 페미니스트들을 잘 까줬다며 하하호호 따봉을 날리는 중이다. PC함에 대한 요구가 희화화되고 비난받는 상황.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극성과 과도함의 실체는 없다. 글 서두에서 과도한 PC함이라는 개념이 거대한 허수아비라고 말했다. 허수아비 때리기가 문제인 건, 단순히 허상을 때려서가 아니라 그 허상으로 실재하는 진짜 문제를 가려버려서다. 한때 유행한 ‘과격한 페미니즘’이란 표현이 그러하듯, 과도한 PC함이란 표현 역시 일부의 과도한 행태만을 비난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과도한’이라는 관형어로 PC함 전체를 수식하는 문법적 사기 혹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 속임수는 정치적 올바름을 폭력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기만적이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만연한 폭력이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보다는 결여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위근우|칼럼니스트

    위근우|칼럼니스트

    말뿐이 아닌 실재하는 과도함을 찾고 싶다면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된다. 세월호 희생자의 시점에서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이란 표현을 써서 성적대상화 논란을 일으킨 소설가 강동수가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것이 과도한 일이다. 촬영 중 동료 여배우를 성추행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남배우 조덕제를 응원하고 피해 배우를 욕하는 글이 남초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오고 그에 대해 동의의 댓글이 뒤를 잇는 게 과도한 거다. TV 토론에 나와 호모포빅한 발언을 한 국회의원 이언주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8만명이 넘는 게 과도한 일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강제적 힘을 발휘한 적 없던 사회에서 과도한 PC함으로 인한 경직된 문화를 걱정하는 건 주제넘은 소리일 뿐이다.

    한국에서 폭력은 올바름에 대한 강박보다는 그름에 대한 용인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 거대한 폭력은 외면하거나 용인하고, 그 폭력에 대한 국지적 반발로서의 반폭력은 불편해 미치겠다는 이들의 정신세계야말로 유난이고 극성이고 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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