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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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isenberg | 2018.04.03 00:16 | 조회 983 | 공감 0 | 비공감 0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정말 많은 일이 있어 참 몸도 마음도 힘든거 같네요...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사회 곧곧에 적폐(너무 정치적인 용어같아 사용하기 꺼려지지만)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histle-blowing 할
    용기도 없다는게 더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종종 시를 읽곤 하는데 오늘 유난히 김수영 시인의 아래의 시가
    가슴에 울리는것 같네요...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희망의 문학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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