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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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트체 | 2017.12.03 23:21 | 조회 1401 | 공감 0 | 비공감 0

    내가 정말로 가고싶었던 대학교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꿈을 꿔왔던 대학교였다.

    다행히 1차평가에서 합격을 하고 최종평가를 위한 서류의 제출을 준비할 때였다.

    대학은 나에게 자기소개서라는 서류를 요구했다.

    내 성장배경을 원했으며 그 배경 속에서 어째서 이 대학교와 사학을 선택했는지 서술을 해야하는, 그러한 서류를 나에게 요구했다.

    노트북에 앉았다.

    멍하니 자기소개서 양식을 보았다.

    내 유년기와 소년기,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을 되짚어보았다.

    이상하게 안좋은 기억들만이 떠올랐다.

    수없이 찾아오던 독촉자들과 집을 나간 어머니, 조모님 조차 돈을 벌러 나가시고 집에 홀로 남겨진 동생과 나.

    그러기 싫어서 동생과 일부러 밖으로 나가곤 했던 어린 시절들.

    그러던 중에 집 근처에 있는 전통건물과 위인들의 묘같은 유적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사학을 배우길 원한 소년기.

    '아, 이거 괜찮다. 스토리가 되겠다! 쓸게 이렇게도 많다니 다행이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그대로 썼다.

    글이 어둡긴 했지만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확실하고 호소력있게 썼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짓은 1%도 없었다, 내 일생을 그대로 옮긴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소서를 첨삭받으러 학교에 갔다.

    국문학과 출신의 담임선생님이 첨삭을 하시러 내 자기소개서를 보셨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자기 교직생활 중에 이런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쓴 학생은 네가 처음이라고, 충분히 가능성있어 보인다고, 굉장히 새로우면서 설득력이 있다고. 이 틀을 그대로 가져갈것을 제안하셨다.

    기뻤다. 그래도 내 삶이 가치없는 삶이 아니었구나.

    약간의 문장과 단어의 첨삭을 받았고 내 마음과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자소서를 학원에 가지고갔다.

    수학과 출신의 입시학원 선생님은 당혹스러워하셨다.

    자소서는 이런식으로 쓰면 안된다고, 가망이 없다고,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며 당장 바꿀것을 요구하였다.

    그때 나는 내 인생 전반에 대한 모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소서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 선생님에게 화가 났다.

    물론 선생님은 나에게 모멸감을 줄 의도는 아니었을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소서엔 내 인생이 들어있었다. 바꾸기 싫었고 바꿀 수 없었다.

    나에겐 소위 대학가에서 원하는 양식 따윈 필요없었다.

    인위적인 것보단 자연스러운게 낫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막연히 마음에 담고있었다.

    이제 이 자소서는 내 인생의 압축판이며 자존심이었다.

    '바꿀 생각 없습니다. 절대로 바꾸지 않겠습니다. 이게 제 인생입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에 수업이 잡혀있었지만 난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가버렸다.


    난 자소서를 바꾸지 않고 제출을 했다.

    그리고 2차평가를 받으러 학교에 방문해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최종발표날-결과는 합격이었다.

    최종, 최초 합격이었다.

    기뻤다. 아주 기뻤다.


    합격 후 한 친구와 식사를 했다.

    내가 게이라는것 빼고는 나에 대한 모든것을 알고있는 절친한 친구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곳에서 나는, 자소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니까, 교수들은 '전 어머니가 없어요' 라고 쓴 자소서를 보고 날 뽑았단 말이지!"

    '이런걸 듣고 웃으면 안되는데' 라고 말하는 친구와 별 생각 없는 나는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웃었다.

    "좀 동정표를 받았을지도 몰라! 학원선생님 말씀을 안들은게 잘한 선택이었다니까"

    음식은 맛있었다.

    과거는 어찌되었든 내 현재는 한없이 행복했으니까.

    모든것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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