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도배에 문자 테러까지... EBS가 뭘 잘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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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취여신 | 2017.12.28 21:40 | 조회 104
     지난 25일 방송된 EBS <까칠남녀>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1부'의 화면.

    ⓒ EBS


    동성애자로서 남들 앞에 서는 것에 큰 두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을 꺼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귀찮아서'다. 일단 내가 게이라는 걸 밝히고 나면 정해진 수순처럼 사람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성적 지향을 언제부터 알았느냐,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면 여자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이냐 등등. 심지어 남자 둘이서 성관계는 어떻게 맺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을 중심으로 성 소수자들이 미디어의 전면에 나선 이후로는 이 같은 궁금증을 던지는 이들이 줄어들긴 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반응하는 게 세련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차라리 먼저 물어보는 게 나았겠다 싶을 정도로 성 소수자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을 가진 사람이 아직 너무도 많다. 심지어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혐오로 자신을 무장한 채 부러 악의적인 왜곡들을 습득하는 사람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몇몇 유명 성 소수자 방송인들이 형성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별로 없으니 정말 몰라서 실수하기도 한다. 물론 이제는 성 소수자를 다룬 책도 여럿 발간되었고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을 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그런 정보를 부러 찾아보는 이들은 흔치 않다. 휴대폰에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두고도 전화로 길을 물어보는 게 사람들이다. 심지어 나도 비슷한 문제를 겪은 경험이 있다. 성적 지향을 깨달은 중학생 시절 나는 동성애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그나마 그 시기보다 몇 년 전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지금의 성 소수자 청소년들도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을까.

    <까칠남녀> 성 소수자 특집에 만족한 이유

     지난 25일 방송된 EBS <까칠남녀>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1부'의 화면.

    ⓒ EBS


    이런 맥락에서 반가운 소식이 등장했다. 지난 25일, 바로 EBS의 교양 프로그램인 <까칠남녀>가 성 소수자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다. 일상 속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것을 취지로 한 이 프로그램은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에 걸맞게 <까칠남녀>는 지금 여성 혐오·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편견·임신 중절 등 다양한 젠더 이슈를 다루어 왔다.

    그리하여 며칠 전 방송된 성 소수자 특집 1부는 어땠을까. 우려도 기대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을 표하고 싶다. 비록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긴 했지만, 이날 방송은 성 소수자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부터 통념처럼 퍼진 편견과 오해에 대한 반박까지 유려하게 갈무리했다.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패러디해 '모르는 형님들'이라는 콘셉트로 방송을 진행한 것도 탁월했다.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말하는 순간이 등장했음에도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나치게 무겁게 잡지 않아, 이들이 인식의 부재 탓에 '차별'을 겪는 상대적으로 '낯선 존재'일 뿐 동정이 필요한 '불쌍하기만 한 존재'가 아님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특히나 성 소수자를 단지 '약자/피해자'로만 파악하는 프레임이 답답한 입장에서 매우 마음에 드는 접근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까칠남녀>의 성 소수자 특집 방송에 딴지를 거는 이들이 등장했다. 바로 보수 기독교계를 기반으로 한 성 소수자 혐오 집단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까칠남녀>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을 항의로 도배하고, EBS에 민원 전화를 넣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담당 PD의 개인 휴대폰으로 하루 수십 통의 '문자 테러'를 하는 것은 물론 아예 방송사 앞에서 항의 집회까지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이 남긴 개별 메시지들이 이전부터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혐오와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굳이 여기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떻게 공영 교육 방송이 이런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성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교육 방송의 의무다

     지난 25일 방송된 EBS <까칠남녀>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1부'의 화면.

    ⓒ EBS


    사람들은 내가 서두에서 언급했던, 성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사소한 불편이나 해프닝 정도로 보곤 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사회적인 문제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제도·미디어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서 존재가 드러나는 이들은 오직 이성애자와 시스젠더(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거나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여성·남성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지와 편견은 보편적인 것이 되고 이 때문에 성 소수자들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더 많은 난항을 겪어야 한다. 한마디로 이런 문제들은 성 소수자들을 사회가 평등하게 다루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즉, 성 소수자가 겪는 문제를 둘러싼 통념과 달리 이 문제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다. 특히나 내가 언급한 것들은 무엇보다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특히 공영 방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공영 교육 방송이 성 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관련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을 넘어서 의무인 셈이다.

    <까칠남녀>의 성 소수자 특집 방송 1부에서 박한희 변호사는 이미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혐오로 가득 찬 주변의 환경 때문에 트랜스젠더로 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는 나를 포함한 다른 성 소수자들도 겪었거나 혹은 누군가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다. 사람들이 성 소수자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고 막연한 혐오가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누군가의 무지와 오해로 한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가능성을 포기하게 하는 게 이 사회에서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일까? 전혀 그럴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까칠남녀>의 성 소수자 특집 방송이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에 방송된 것에 더욱 분노한 모양이다. 하지만 차별 없는 사랑과 보편적 인류애를 추구한 예수가 지금의 한국에서 이 방송을 보았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아마 자신의 이름으로 반대 시위를 펼치는 혐오세력 쪽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맞은 편에서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등장해 다행인 이 모범적인 방송을 온 학교에 뿌려 교재로 쓰게 해달라고 피켓을 들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차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평등하게 인식하고, 알고, 아낄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예수가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며 추구한 가치가 아닌가. <까칠남녀> 성 소수자 특집 2부가 방송되는 2018년 새해에는 반(反)성소수자 세력도 혐오를 내려놓고 진정한 사랑의 실천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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